피아노와 인생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III

차한잔의여유 2009. 4. 18. 12:01

4. 아르카디 볼로도스 (Arcardi Volodos)

 

72년생의 러시아 출신 젊은 피아니스트. 내가 그의 연주를 처음 접한 건 2001~2002년 쯤 서울 종로의 뮤직랜드 클래식 코너에서 여종업원이 추천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CD를 통해서였다. (그 여종업원이 폴리니를 좋아한다고 해서 한참 동안 피아노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아쉬케나지,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호로비츠가 연주한 음반 외에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혹 다른 누가 또 음반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 여종업원에게 한번 물어봤는데 갑자기 흥분(?)하더니 볼로도스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권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음반이 라이브인데다 소니클래식이라는 마이너 음반사에서 나온 것이어서 좀 아닌 것 같았는데 어쨋든 반신반의 하면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어쨋든 그렇게 해서 맺어진 볼로도스와의 인연은 그것이 전혀 상술에 넘어가서 맺어진 인연이 아니었음이 곧 드러나게 되는데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CD에 매료되어 몇 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차안에서 틀어놓고 다녔다는 사실이 입증을 하기 때문이다. 볼로도스의 연주는 폴리니와 포고렐리치처럼 한음 한음 터치가 매우 영롱하고 깨끗하면서도 매우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즉, 그의 연주는 어렵고 난해한 곡만을 골라서 연주하는 그리고 스피드와 현란함으로 대표되는 비루투오소적인 연주이다.

 

볼로도스는 앞으로 제 2의 리스트로 불리게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그가 리스트처럼 귀신같은 기교를 지녔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 리스트처럼 기존 곡들의 리메이크 작업 즉 편곡 작업을 왕성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가장 어렵다는 리스트의 곡 조차도 그의 편곡을 거치면 배나 어려운 곡으로 재탄생되고 있으니 그는 정말로 피아노의 천재로 불릴만하다.) 그가 편곡한 모짜르트의 터키행진곡이나 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 15번/13번, 그리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 등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연주 레파토리로 선정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수십 년이 지나면 부조니나 고도프스키처럼 볼로도스가 편곡한 많은 클래식 곡들이 젊은 비루투오소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스터디되고 연주되게 될 것이다. 단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그가 내가 좋아하는 쇼팽 곡들을 별로 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성향이 매우 낙천적이어서 쇼팽의 우울한 곡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쨋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좋아하고 경탄해 마지 않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2007/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