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인생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 (소나타 32번)

차한잔의여유 2009. 4. 5. 21:16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인 32번 소나타를 처음 접했을때가 대학교 1~2학년 때 쯤으로 이보포고렐리치가 연주한 도이치그라모폰의 LP판을 통해서였다. 악보상으로는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듯 보였고 뭔가 베일에 가려서 잘 알려져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었던지라 결국 궁금증 때문에 구입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빌헤름 켐프, 호로비츠, 그리고 알프레드 브렌델처럼 나이 지긋한 명연주자들을 기대했던 내게 떡하니 내밀어진 것은 왠 젊고 잘생긴 어떤 20대 팝스타의 브로마이드 같았던 바로 그 이보포고렐리치의 LP였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스타니슬라프 부닌과 같은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매력에 빠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었고 또 32번 소나타 단독판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는 심드렁한 점원의 말 때문에 뭔가 운명과도 같은 기대감과 함께 구입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구입한 그 LP판이 결국 현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또한 현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작품을 연주한 음반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어떤 운명이 그 반포동 상가의 조그만 레코드 점으로 내 발걸음을 인도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겠다.

 

각설하고,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역시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과 함께 악성 베토벤이 말년에 추구하고자 했던 '고난의 초월을 통한 환희의 감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1악장은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긴장과 갈등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요동치는데 이 역시 교향곡 9번의 1악장과 비슷하며 베토벤의 고통스러웠던 인생과 뭔가 초월된 진리를 추구해가는 한 인간 영혼의 처절한 순례를 보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32번 소나타의 1악장 도입부와 9번 교향곡의 1악장 도입부가 서로 매우 닮아있다는 점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작품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주는 주요한 단서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2악장의 경우에는 1악장으로부터 시작된 긴장과 갈등의 감정들이 종교적 초탈에 의한 평화와 환희로 승화해가는 과정을 묘사해주고 있으며 인간의 좁은 자의식이 우주적 의식으로 확장되며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이 역시 바로 베토벤이 교향곡 9번의 4악장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했던 바로 그 '초월과 환희'인데 이러한 점에서 두 작품은 베토벤이 의도했던 아니던 쌍둥이처럼 매우 닮아있는 작품들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겠다.

  

곡의 작곡기법에 있어서 이 32번 소나타의 1악장과 2악장은 만약 베토벤이 10년만 더 살았었더라면 더 꽃을 피웠을 법한 새로운 작곡기법을 담고 있는데 그 기법은 바로 2개 또는 그 이상의 주제들이 마치 서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얽히고 섥혀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주와 반복을 되풀이 하면서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지만 굳이 붙이자면) progressive recursion 기법이다. 1악장의 경우에는 기존의 소나타 형식에 바하의 푸가적인 기법을 접목하여 progressive recursion을 이루어내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새롭고도 획기적인 시도였으며, 그 기법이 후에 베토벤을 흠모하던 리스트에 의해 다시한번 부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리스트의 피아노소나타 B단조인 것이다. 2악장의 경우에는 2개의 주제가 마치 변주곡처럼 서로 번갈아가면서 여러번 변주되는데 각 변주파트들이 각각 독립된 파트들이 아니라 이전 파트와 이후 파트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 일반 변주곡 형식과는 차별화된다. 즉, 변주곡 형식을 이용하여 두 주제가 서로 얽힌 채로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progressive recursion 기법을 이루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32번 소나타의 음반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만큼 virtuoso적인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면서도 심오한 정서를 잘 살려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곡이기 때문이리라.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그러한 의미에서 최고의 연주이지만 폴리니의 연주도 그에 못지 않다. 1악장 연주의 판가름은 왼손의 16분 음표들이 뭉개지지 않고 얼마나 또렷이 들리느냐에 있는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포고렐리치가 1위, 폴리니가 2위이지만 상대적으로 폴리니가 더 빨리 치기 때문에 기술면에서는 확실히 폴리니가 앞선다고 할 수 있겠다. 2악장의 경우에는 중간의 클라이맥스에서 32분 음표와 64분 음표들이 현란하게 난립하는 상황에서 32분의 12 박자라는 초유의 박자와 그 리듬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있다. 그러므로, 32번 소나타 연주의 핵심은 1.) 페달 사용 자제, 2.) 왼손의 구슬같이 또렷한 터치, 3.) 전체적인 통일성 등이다.

 

최근에 미아 정의 음반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속도나 스케일 면에서는 확실히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구슬같은 또렷한 터치와 섬세한 표현 등은 좋았었다. 즉, 신세대 피아니스트들이 포고렐리치와 폴리니를 벤치마킹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는데 이것은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오히려 박하우스, 리히터 같은 과거의 대가들의 경우에는 전통적인 베토벤 방식 - 즉 속도감과 화려함- 으로 역시 32번을 연주했었는데 이는 베토벤이 말년에 추구하고자 했던 좀 더 섬세하고 낭만적인 감성이라는 부분을 그들이 놓쳤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쨋든 비창이나 월광과 같이 popular하진 않지만 인간의 가장 깊고 슬픈 내면으로부터 가장 심오하고 가슴벅찬 환희를 이끌어 내어주는 32번 소나타야말로 9번 합창 교향곡과 함께 베토벤이 인류에게 선사해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07/6/10 (2009/4/19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