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인생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II

차한잔의여유 2009. 4. 11. 14:46

3. 미첼레 캄파넬라 (Michelle Campanella)

 

이탈리아 출신으로 리스트 스페셜리스트이면서 현재는 지휘와 실내악 중심의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그의 연주를 처음 접한건 바로 고등학교 졸업 직전 대학 진학의 부푼 꿈을 지닌 마지막 겨울방학 때였다. 그때 바하, 쇼팽, 베토벤의 테입과 음반을 사 모으다가 우연히 말로만 듣던 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 테입을 보게 되었다. 피아노의 귀신이라는 리스트 그리고 정말 초절 기교를 필요로 한다는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그 당시로는 감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함 들어보기나 하자 하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서 듣게 되었었는데.. 그게 정말이지 모든 곡들이 마치 두 사람이 치는 것 처럼 자꾸 들려서 몇 번씩이나 자켓을 봤는데 거기엔 캄파넬라 라는 이름 하나 달랑 있는 것 외에는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한 사람이 치는데 마치 두 사람이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리스트 곡들이 초절기교라는 명성을 얻은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법 중 하나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쓸 일이 있겠지만 아뭏든 그때로서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여담이 길었는데 어쨋든 캄파넬라의 리스트 연주는 후에 리스트의 음악을 접하면서 알게된 십수명의 리스트 스페셜리스트 또는 비루투오조 부류의 피아니스트하고도 또한 약간 색다른 연주이다. 대부분의 비루투오조 피아니스트들의 공통점은 아찔한 스피드와 화려함으로 말 그대로 기교를 자랑하기에 급급한 느낌이 드는데 캄파넬라의 경우에는 스피드와 긴 호흡 그리고 리스트만의 밝고 낭만적인 서정 등등 어디 하나에 치우침 없이 모두 제대로 살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과연 초절기교의 곡을 치는 것인지 아니면 모짜르트의 우아한 소나타를 치는 것인지 혼동될 정도로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영롱하고 깨끗한 터치는 포고렐리치나 폴리니를 연상케 한다.

 

캄파넬라는 필립스, 도이치그라모폰 등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서는 헝가리 광시곡 외에 다른 음반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캄파넬라는 마이너 음반사를 통해서 약 10개 가량의 음반들(리스트, 슈만, 무소르그스키, 스카를랏티, 쇼팽 등등)을 남겼다. 그는 아마도 마이너 음반사들과 좀 더 친했던 것 같다.^^ 사실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메이저 음반사들을 통해 녹음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의문과 아쉬움이 있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헝가리 광시곡 전곡 음반만으로도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충분히 불리워질 수 있을 것이다.

 

2007/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