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또한 가장 어려운 피아노협주곡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 당시 귀족계급이었던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일치감치 미국에 피신 & 체류하면서 완성시킨 곡이 바로 이 곡인데 초연시에는 뉴욕필과 함께 본인이 직접 연주해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최전성기에 작곡되었을 뿐 아니라 작곡기간이 무려 3년으로 그가 기울인 정성과 노력 그리고 이 곡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호주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그린 영화 '샤인'에 등장하면서 더욱 대중에게 알려졌었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이 곡을 엄청난 열정과 스피드로 연주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장면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곡인 것은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아예 악보조차 구입하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건 대학 시절 아쉬케나지의 음반을 통해서였는데 그때는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받진 못했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아쉬케나지의 연주가 좀 딸리는(?) 것 같았고 당시 쇼팽 음악에 심취해있던 내게 러시아적 분위기가 다소 생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뒤로 약 10년 이상 별로 듣지 않던 곡이었는데 2001년도부터 LP 음반들을 CD 레이블로 전부 교체하는 과정에서 다시 듣게 되어 새롭게 그 진가를 발견하게 된 곡 중의 하나이다. 일단 이 곡에서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 유명한 1악장의 주제 선율이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melancholy와 서정성을 지닌 그 선율은 몇 번의 변주를 거치면서 혹은 끊어질듯한 애절함을 혹은 물밀듯 밀려오는 감동을 들려주게 되는데 그 아름다움이란 역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2악장의 경우에는 주제선율이 좀 더 비통해지는데 이는 제 3악장의 화려함을 좀 더 도드라져보이게 하기위한 포석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3악장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에서 느낄 수 있는 수준의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데 마치 대자연의 장관이 내 앞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 감격과 감동이 밀려온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황홀한 클라이맥스 부분이 그리 길지 않으며 바로 코다로 진입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좀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곡의 명반으로는 볼로도스가 연주한 음반과 호로비츠가 연주한 음반, 그리고 비록 모노로 녹음되어서 음질은 좋지 않으나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한 명반이 있다.
5.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협주곡 1번의 흥행실패로 인한 후유증으로 한동안 작품활동을 쉬며 괴로워하고 있다가 이 곡을 통하여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라흐마니노프에게 있어서 매우 특별한 곡인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은 각 악장의 주제 선율들이 모두 아름답고 시적이어서 팝송과 영화에 자주 사용되는 가장 낭만적인 피아노협주곡이다. 제 2악장의 주제 선율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melancholy를 가지고 있어서 1970년대에 팝송으로 리메이크 되었었는데 바로 Eric Carmen의 'All by myself'이다. 3악장의 경우에는 제 2주제의 선율이 역시 1970년대 말에 '라스트콘서트'라는 당시 히트쳤던 영화의 주제곡 선율로 사용된 바 있다. 1악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약간 춥고 회색의 하늘을 보는 듯한 어두움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러시아의 정서와 민속적 요소를 표현하고자 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2악장 역시 약간 슬프며 melancholy하다. 하지만 3악장은 춤곡과 같이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제 1주제와 함께 시작되며 연이어서 매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제 2주제가 나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이 3악장이 이 곡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모든 악기들이 2주제를 강하게 연주하면서 코다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도 3번 협주곡에서 느낄 수 있는 비슷한 카타르시스를 역시 느낄 수 있다. 2번 협주곡의 명반으로는 여류 피아니스트인 엘렌 그뤼모의 음반과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한 음반을 들 수 있겠다.
6. 그리그 피아노협주곡 가단조
그리그의 하나밖에 없는 피아노협주곡 a단조는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민속적인 색채를 활용한 최초의 피아노협주곡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작곡 연대인 1868년은 베토벤, 쇼팽, 슈만, 리스트로 연결되는 계보에 의해 피아노 음악의 모든 영역이 구축되고 완성되어 이제 더 이상의 새로운 발견과 발전은 없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피아노협주곡은 당시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해 갈망하던 음악가나 피아니스트들에게 시원한 생수이자 단비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3악장인데 기존의 론도 형식 (첫번째 주제가 자주 반복되는 형식)과 같은 밋밋한 구도를 탈피하고 중간에 낭만적이고도 서정적인 두번째 주제를 큰 비중으로 삽입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후반의 코다와 클라이맥스에서도 첫번째 주제 대신 오히려 두번째 주제를 사용하였고 모든 악기들이 ff로 강하게 노래함으로써 청중들에게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는 점이다. 실제로 5년 뒤에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과 30년 뒤에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 3번의 3악장에서도 이러한 기법이 좀 더 확장되어 사용된 것을 보면 의식했건 아니건 간에 분명 이 곡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다. 이 곡을 들으면 북구의 맑게 갠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민속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앞서 기술한 3악장의 두번째 주제 선율은 청명한 아침햇살과 이슬에 젖은 숲 속의 나뭇잎 그리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들을 연상케 하는데 그 아름다움이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곡의 명반으로는 크리스티안 짐머만과 카라얀이 협연한 도이치그라모폰의 음반이 있다.
7. 슈만 피아노협주곡 가단조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 걸작 두 가지만 고르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연 교향적연습곡과 피아노협주곡 두 곡을 들 것이다. 당시의 정체된 형식과 기교로부터 과감히 탈출하여 자유분방함과 비루투오소적인 기교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두 곡은 베토벤과 리스트를 잇는 가교의 역할과 함께 피아노 음악사에 적지않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1악장은 원래 환상곡 형태로 먼저 작곡되었는데 나중에 2악장과 3악장을 작곡해서 같이 묶어 협주곡 형태로 최종 발표했다고 한다. 1악장은 약간의 엄숙함과 고뇌가 진행되는 가운데 중간중간 기쁨과 환희가 표출이 되어 인간 내면의 갈등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1악장의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기복은 2악장에서 정리되어 3악장으로 넘겨지게 되는데 역시 결말은 고뇌로부터의 해방과 승리이며 그로부터 오는 환희와 기쁨이다. 슈만의 경우에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한 좌절과 처가와의 불화, 그리고 30대부터 앓기 시작한 각종 정신/육체적 질환 등으로 순탄치 못한 생을 살면서 46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죽게 되는데 이 작품 또한 한 천재의 고뇌와 그 고뇌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염원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아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쨋든 론도 형식인것 같기도 하고 소나타 형식인 것 같기도 한 3악장은 환희에 기뻐 춤추는 축제의 모습을 연상케하는데 피아노 파트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무궁동이라는 측면에서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과 닮은 점이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작곡된 피아노협주곡으로서 거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슈만의 가단조 피아노협주곡의 명반은 역시 폴리니의 음반을 들 수 있고 그 외에 바렌보임과 알프레드 브렌델의 음반도 있다.
2007/9/14 (2009/6/22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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