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과학

방충망을 통해 가로등을 보면 왜 퍼져보일까? (광학)

차한잔의여유 2009. 4. 11. 14:54

필자가 대학원 시절 야심한(?) 여름밤에 기숙사 라운지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방충망을 통해 밖을 내다본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로등의 빛이 위아래 그리고 양옆으로 퍼져 보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방충망으로 보는 가로등은 늘 저렇게 십자가 모양처럼 길쭉하게 퍼져 보인단 말이야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냥 지나치려다가 뭔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방충망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까 퍼져 보이던 빛이 그냥 두리뭉실하게 퍼져보이는 게 아니라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이 선명하게 존재하면서 주기적으로 패턴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광학에서 말하는 빛의 회절무늬인 것이었다!! 그 전까지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빛의 회절을 일으키는 격자의 크기는 빛의 파장과 비슷한 크기여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방충망의 뚫린 부분의 크기는 ~1 mm 로 매우 크기 때문에 그것이 설마 빛을 회절시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던게 아닌가 추측된다.

 

Anyway, 방충망과 빛의 회절에 대해 생각해보자. 멀리 가로등으로부터 오는 빛이 방충망에 도달하면 그 빛의 일부는 철사에 가려서 통과하지 못하고 나머지 빛은 통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충망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격자무늬가 되는 것인데 철사 사이사이에 뚫려 있는 사각형 공간들 즉, 빛이 통과되는 부분들이 모두 점소스(point source)가 되어서 우리 눈의 망막을 스크린 삼아 경로차에 의한 보강간섭과 소멸간섭으로 이루어지는 회절무늬를 형성시키게 되는 것이다.(광학 현상 및 용어에 대해 익숙지 않은 분들은 대학교재로 쓰이는 일반물리학 책의 광학 부분을 참조하시라.)

 

그렇다면 빛의 파장에 비해 천배 이상 큰 방충망의 구멍을 통해 빛의 회절이 일어난다면 그것의 회절각도는 어느 정도 될까? 대략적인 회절각도의 계산은 단순히 (빛의파장/격자크기) 에 해당된다. 물론 단위는 rad이니까 deg로 환산하려면 여기에다 (180/pi)를 곱해주면 된다. 그럼 한번 계산해보자. 가로등의 주황색 빛의 파장이 대략 0.6 um 이고 격자크기는 1000 um 이니까 각도는 (0.6/1000) 즉 6*10^-4 rad가 된다. 이것을 deg로 환산하면 대략 3.5*10^-2 즉 0.035 deg가 된다.

 

6*10^-4 rad 이라는 각도는 무지 작은 각도이므로 왠만히 거리가 떨어져있지 않으면 구별해낼 수 없다. 만약 가로등이 우리 눈으로부터 약 300 m 쯤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면 회절패턴의 주기는 대략 (6*10^-4 * 300) 해서 0.18 m 즉 18 cm 가 되는데 이는 사람의 손바닥 크기쯤 되므로 300 m 밖에 있는 가로등의 회절패턴을 우리 눈이 감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회절패턴의 주기가 (회절각도*거리) 라는 사실은 실제로 가로등이 가까울수록 그 회절패턴이 좀 더 조밀하게 보이며 멀리 있을수록 좀 더 널찍널찍하게 보인다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름철에 모기와 파리를 막아주는 고마운 방충망.. 그러한 방충망을 보면서 과학이 정말로 재미있는 학문임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 뿐인걸까? ^^

 

2007/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