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과학

팽이, 전자, 그리고 지구 I (고전/양자/천체)

차한잔의여유 2009. 4. 18. 12:55

어린시절 팽이치기를 안해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먼저 팽이를 운동장의 흙바닥에서 돌려보자. 그러면 팽이는 처음 박힌 위치에서 돌게 되는데 처음 박힐때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회전축 자체가 수직축을 중심으로 느리게 회전운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회전축의 회전운동을 세차운동(precession)이라고 하는데 이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러한 세차운동은 원자핵이나 전자와 같은 미시적인 세계, 그리고 지구와 같은 거시적인 세계에도 존재하는 아주 보편적이고도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이다.

 

팽이의 회전 및 세차 운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먼저 스케이트장 빙판 위에서 움직이는 나무토막에 대해 생각해보자. 빙판의 한쪽 끝에서 나무토막을 세게 밀면 그 나무토막은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면서 반대쪽 펜스까지 간 후에 거기서 부딪쳐 멈춰지게 될 것이다. 이때 만약 나무토막과 빙판 사이에 마찰력이 완벽히 0 이고 빙판이 한없이 넓다고 가정한다면 그 나무토막은 멈추지 않고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어떠한 힘이 작용하지 않을때 어떤 물체가 영원히 움직이는 이유는 그것이 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관성(inertia)이란 모든 물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질로서, 어떤 힘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운동 상태를 -정지 상태까지 포함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성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성의 개념으로부터 힘(force)이라는 개념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는데, 즉 운동 상태를 변화시키는 어떤 요인이 바로 힘이 된다.

 

팽이의 경우에도 팽이를 처음에 누군가 힘을 주어 돌려주면 관성이 있어서 계속 돌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회전하는 물체가 그 회전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관성을 앞서 언급한 나무토막의 선형관성과 구별해서 회전관성 (rotational inertia) 이라고 하는데 각속도와 곱해져서 방향을 갖는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의 형태로 물리교과서에 나오게 된다. (각운동량의 절대값은 회전관성*각속도이고 그 방향은 회전축의 방향이 된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최고'를 의미하는 오른손의 엄지를 들어보일때 나머지 손가락들이 회전방향을 가리키면 엄지가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각운동량의 방향이 된다. 일명 오른손 법칙) 즉, 결론은 외부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을때 회전체는 회전을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회전 관성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왜 중력이라는 힘은 팽이의 회전을 넘어뜨리지 못하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어떤 힘이 가해지면 그 운동에 변화가 생긴다고 했는데 팽이에게는 늘 아래로 잡아끄는 중력이 있는데 왜 팽이는 넘어지지 않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토크(torque)라는 각힘(angular force)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회전체의 각운동량을 변화시키는 힘은 일반적인 힘이 아니라 바로 토크라는 각힘이기 때문이다. 즉, 중력이 회전체에 작용한다고 해서 회전축이 중력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야기되는 토크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력에 의해 팽이의 회전축에 가해지는 토크의 방향을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데, 토크의 방향은 일반적으로 원점에서 회전체 무게중심까지의 길이벡터와 힘벡터의 벡터곱 (r X F)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만약 팽이가 약간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중력에 의해 발생되는 토크의 방향은 회전축의 방향과 중력의 방향 모두에 대해 수직인 방향 -즉, 지면에 대해서 수평인 방향- 이 된다. (여기서도 앞서 얘기한 오른손 법칙이 적용되는데 엄지를 제외한 모든 손가락들을 회전축 방향에서 중력방향으로 향하게 주먹을 쥐면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토크의 방향이다.) 즉, 지면에 대해 수평방향의 토크가 팽이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므로 팽이의 회전축이 수평방향으로 뱅글뱅글 돌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팽이의 세차운동인 것이다. 즉, 지면과의 마찰력이 없고 중력만 작용하고 있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는 팽이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회전운동과 세차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팽이의 회전축이 지면과 닿아있기 때문에 마찰력에 의한 회전속도의 감소가 일어날 수 밖에 없고 결국 팽이는 데구르르 죽게 된다.

 

팽이의 세차운동과 관련하여 한두가지 현상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것은 팽이의 회전이 느리거나 또는 회전축의 각도가 더 기운 상태에서는 왜 세차운동이 더 빠른가? 하는 것이다. 이것도 앞서 각운동량과 토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문제들이다. 먼저 팽이의 회전속도가 느려진 경우에 대해 생각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곱이 바로 각운동량인데 팽이의 각속도(회전속도)가 느려지면 팽이의 각운동량도 작게 된다. 즉, 각운동량이 클때는 회전축이 천천히 움직여도 가해지는 토크를 충분히 보상했는데 각운동량이 작을때는 회전축이 빨리 움직여야만 같은 크기의 토크를 보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회전축의 세차운동이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팽이의 회전속도는 일정한데 회전축의 각도가 더 기울어진 경우에 대해 알아보자. 이 경우는 앞서 설명한 것과 반대로 각운동량은 일정한데 토크가 더 강해진 경우에 해당된다. 즉, 앞서 언급했듯이 토크는 회전축벡터와 힘벡터의 벡터곱인데 이것의 절대값은 그 두 벡터의 사이각도의 sin 값에 비례하므로 팽이의 각도가 더 기울게 되면 토크의 절대량도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전축이 더 빨리 움직여야만 그 커진 토크를 보상할 수 있게 되므로 세차운동이 더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의 장난감인 팽이는 아쉽지만 지면과의 마찰력으로 인해 결국 그 회전을 멈추면서 넘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인간의 눈으로는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고 또 인간의 시간으로 봤을때 거의 영원히 돌고 있는 크고 작은 팽이들이 있다. 이제 이러한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 존재하는 팽이들을 보러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2007/06/24 (2009/04/18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