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인생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3번

차한잔의여유 2009. 4. 5. 21:25

요즘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3번의 1악장을 연습하고 있다. 4악장은 예전에 쳐봤고 1악장은 좀 더 난해한 것 같아서 벼르고 있다가 지금에사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 1악장의 느낌은 마치 쇼팽의 발라드처럼 뭔가 긴 서사적인 시 한편을 읖는듯 하다고나 할까? 역시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적절함을 잘 보여주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처럼 힘찬 느낌을 주는 제 1주제, 그리고 이어서 뭔가 어두운 곳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의 묵직하면서 긴장된 선율, 그리고 그러한 것을 통과해서 환한 하늘이 비추고 있는 이상향 및 그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천상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제 2 주제의 아름다움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또한 마지막 코다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왼손이 트릴을 연주하는 가운데 오른손이 마침화음을 연주하는 부분은 마치 이제 이 긴 이야기를 마칩니다 하는 식의 느낌을 주는 정말 말 그대로 서사시 한편을 끝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말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 아닐 수 없다.

 

쇼팽은 총 3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는데 보통 2번과 3번 소나타가 유명하며 연주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이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특징은 바로 제 1악장의 재현부에 있다. 즉, 재현부에서 1주제를 생략하고 바로 2주제부터 재현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소나타 양식에서 제 1주제가 세번 (제시부의 도돌이까지 포함해서 네번) 이상 반복이 되어 청중들에게 약간의 지루함을 주는 것 같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즉, 제시부 - 제시부 반복 - 전개부 - 재현부 이렇게 네 부분 모두 제 1주제가 사용된다면 1악장에서만 비슷한 선율을 네번씩이나 듣게 되어 청중들이 지루함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쇼팽은 재현부에서의 1주제 재현를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바로 2주제 재현으로 넘어가버린게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겠다. (2주제의 경우에는 전개부에서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 회수는 1주제와 같게 된다.) 어찌되었든 쇼팽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당시 정체되어가던 소나타 양식에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쇼팽 소나타 3번의 네개 악장 중에서 역시 그 화려함, 속도감, 그리고 아름다움의 극치인 4악장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쇼팽의 모든 곡 중에서 영웅 폴로네이즈와 함께 가장 호쾌하고 장대한 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엄청난 속도의 오른손 스케일과 후반부 왼손의 아르페지오는 정말 피나는 연습없이는 정복할 수 없는 virtuoso 적인 부분들이다. 곡의 전반적인 느낌은 단조이면서도 매우 웅장하고 밝고 에너지가 넘쳐난다. 마치 쇼팽이 가장 힘이 넘쳐나던 20대때 작곡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쇼팽이 이 곡을 작곡한 시점은 병사하기 5년전 즉 1844년도이다. 즉, 내성적인데다 병마와의 싸움으로 인해 지쳐있을대로 지쳐있어야 했던 당시의 쇼팽이 이토록 호쾌하고 당당하고 멋진 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얼핏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는 병마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조르쥬 상드와의 사랑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마도 당시 조르쥬상드의 극진한 간호와 사랑 앞에서 건강과 남성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쇼팽의 열망에 기인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쇼팽의 피아노소나타 3번 연주로는 역시 폴리니가 연주한 그라모폰의 명반을 첫번째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4 악장에서 왼손이 16분 음표를 아르페지오로 빠르게 연주하는 마지막 변주 부분에서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왼손 음들이 뭉개지고 그 흐름이 무너지는데 반해 폴리니는 그 부분에서조차도 빠르면서도 또렷한 음을 선사하고 있다. 최근에 들은 임동혁 군의 연주 또한 폴리니 못지 않게 그 속도와 명료함이 대단했으나 곡의 리듬이나 전체적인 흐름을 유지해나가는 통일성 면에서 아직 성숙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부분만 잘 보완되면 임동혁 군은 정말 대성할 인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쨋든 쇼팽의 소나타 3번은 베토벤의 소나타 32번과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와 함께 피아노소나타의 최정상이라고 하는데있어 어느 누구도 주저하진 않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서정성 그리고 호쾌함과 기술적인 매력을 갖춘 소나타 3번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쇼팽이 우리 인류에게 선사한 또 하나의 선물이다.

 

 2007/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