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상들

국이 먼저였을까 숟가락이 먼저였을까?

차한잔의여유 2009. 11. 22. 01:52

우리나라에서 식사를 할 때에는 국 또는 찌개와 같이 국물이 있는 side dish가 늘 수반된다. 그리고, 죽이나 탕, 전골처럼 국물 있는 main menu도 다양하게 있다. 물론 서양에도 떠먹는 수프가 있고 일본에도 장국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떠먹는 음식이 다양한 나라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주식(동양에서는 밥, 서양에서는 고기와 빵)을 먹을때 숟가락을 사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외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같은 동양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고 국을 먹을때는 그냥 마시거나 아니면 따로 준비된 작은 국자로 먹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숟가락을 식사의 main 도구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쓰잘데 없는 질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역쉬 직업병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숟가락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국물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반대로 전통적으로 국물 음식이 발달해서 숟가락이 main 식사도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는지 이다. 즉, 제목처럼 국이 먼저였을까? 아님 숟가락이 먼저였을까? 이다. 이러한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류의 질문보다도 더 쓰잘데 없는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한국이라는 조그마하면서도 나름 복잡한 나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는 질문이라 생각되어 한번 추측성 이야기를 전개해보기로 하겠다. 물론, 식문화를 전공하셨거나 정통하신 전문가들 중에서 답을 알고 계신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끝까지 읽어보시고 잘못된 점을 잡아 주시면 감사하겠다.

 

일단, 숟가락과 국의 역사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숟가락의 경우엔 무려 5000년전 중국의 초기 청동기 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초기 숟가락의 형태는 국자 모양으로 솥에서 삶은 고기를 꺼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가 점차로 밥을 먹는 용도로 변화되어 왔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국의 경우에는 기원전 3세기경의 문서에 이미 국에 대한 언급이 적혀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단 역사적으로는 숟가락의 역사가 국의 역사보다는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A가 시간적으로 B보다 앞선다 하여 A가 B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B가 A보다는 뒤늦게 등장했지만 A가 아닌 어떤 다른 C라는 원인때문에 등장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왜 우리나라에만 국물음식이 다양하고 많냐는 질문의 답으로도 역시 2% 부족하다. 왜냐하면 만약 시간적인 순서가 그 원인이라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국가들과 민족들에서도 다양한 국물음식 문화가 발전되어 왔어야 했는데 전 세계를 뒤집어봐도 국물없이 못사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 그러한 결론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적인 순서는 답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답은 무엇일까?

 

일단 계속 논리를 전개해보도록 하자. 먼저 국물음식과 같이 우리나라 식문화에만 있는 독특한 점들에 대해서 논의하다보면 혹시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겠다. 국물음식 외에 우리나라 식문화의 독특한 점은 바로 된장, 간장,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또는 발효소스)인데 이 또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간장은 중국과 일본에도 있고 청국장과 기무치 또한 일본에도 있긴 하지만 된장, 간장, 김치와 같은 발효소스들을 side dish를 만드는데 있어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러므로, 혹 국물음식 발달이 이러한 발효소스들과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나라 식문화의 독특한 점을 들라고 하면 바로 기름 대신 깨끗한 물을 사용하여 음식을 조리하는 조리법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유럽은 석회수로 유명하고 중국은 황토물로 유명하듯이 우리나라처럼 국토의 어느 곳에서나 깨끗한 강물 및 지하수를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종류의 국물음식이 발전한 이유가 단지 숟가락사용 때문이기보다는 국물음식의 제조에 필요한 1) 풍부하고 깨끗한 식수자원, 2) 된장, 간장, 김치와 같은 간을 맞출 수 있는 다양한 발효소스의 발달, 3) 밥이라는 주식을 먹기 위해 적당히 간이 있으면서도 목메임을 방지해주는 유동성 액체의 필요성 등 숟가락 이외의 다른 몇가지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최종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바이다. 고추가루를 사용하는 현재의 김치의 경우에는 16세기 조선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역사가 비교적 짧지만 간장과 된장의 경우에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있어왔다고 중국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기록에는 없지만 이미 상고시대부터 국물음식이 다앙하게 발전되어 오지 않았겠는가 하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면 우리나라에만 숟가락이 식사도구 중에서 으뜸의 지위를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또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숟가락이 처음에는 밥을 먹는 도구로만 쓰이다가 국물음식이 점점 발전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물까지 먹는 도구로 발전하면서 식사도구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갈 수 있었던 반면 중국과 일본처럼 국물음식이 많지 않으면서 젓가락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그러한 식문화권에서는 점점 식사도구로서의 지위를 젓가락에 빼앗기게 되지 않았겠는가 설명을 해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최종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숟가락을 사용해왔기 때문에 국물 음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통적으로 국물 음식이 발달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숟가락이 main 식사도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다. 물론 이 결론이 혼자만의 생각이기 때문에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혹 정말로 이런 분야에 전공하신 분이 계시다면 댓글 남겨주시면 너무도 감사하겠다. 아는 것의 기쁨은 나눌 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라 필자의 결론이 맞든 안 맞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 생각하며 이만 마치고자 한다.

 

여담: 그렇다면, 밥그릇을 들고 먹는 식문화와 숟가락 사용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일본과 중국인은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밥그릇을 들고 먹고 우리는 숟가락을 사용하는데 밥그릇을 놓고 먹고.. 아, 복잡하다..^^;

 

2009/11/22 씀